본문 바로가기
주간설교

성령의 사람들: 세상은 성령을 무시합니다.

by S D G(Soli Deo Gloria) 2026. 3. 22.

성령의 사람들: 세상은 성령을 무시합니다.

핵심 메시지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의 본질적 차이는 영적 세계를 분별하느냐에 있습니다. 진정한 성령의 사람은 '속사람'으로 살아가며 영적인 가치를 추구하지만, 세상과 겉모습에만 머무는 이들은 성령의 역사를 무시하거나 조롱합니다. 이 설교는 우리 안에 진정으로 성령의 임재를 사모하는 '속사람'이 살아있는지 돌아보게 합니다.

속사람과 겉사람, 영적 분별의 중요성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을 가르는 결정적인 차이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영적인 세계를 분별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속사람’으로 살아가는 존재라면, 비그리스도인은 오직 ‘겉사람’에 머물며 살아갑니다.

우리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삶의 모든 관심은 언제나 영적인 가치에 머물러야 합니다. 만약 수십 년간 교회에 출석했음에도 여전히 눈에 보이는 세상의 것에만 매몰되어 있다면, 비록 몸은 공동체 안에 있을지라도 본질적으로는 그리스도인이 아닐 수 있습니다. 거듭나지 못한 채 여전히 ‘겉사람’의 습성에 머물러 있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우리의 겉사람은 시간이 흐를수록 쇠퇴하지만, 속사람은 날로 강건해진다는 점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4장 16절에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그리스도의 영으로 사는 사람들의 핵심적인 특징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말씀처럼 겉사람의 욕망은 점차 사라지고, 반대로 속사람이 날마다 새로워지고 있다면 우리는 성령 안에 거하는 참된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 핵심 요약

그리스도인은 영적인 세계를 분별하고 '속사람'으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겉사람이 쇠퇴할 때 속사람이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이 성령 안에 거하는 참된 믿음의 증거입니다.

경건한 유대인의 영적 무지 (사도행전 2:5-13)

사실 그리스도와 무관하게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과 우리를 구별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정작 심각한 문제는 교회 내부에 존재하는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을 분별하는 일입니다. 더 나아가, 같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도 서로 다른 가치관으로 대립하는 두 부류의 갈등은 언제나 우리 공동체의 아픈 단면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이들 또한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자부하던 유대인들입니다. 이들은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라는 초자연적 역사를 목도하고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는커녕, 냉소적인 비판과 거부의 태도를 보입니다.

5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더니

6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7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8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9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10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11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12다 놀라며 당황하여 서로 이르되 이 어찌 된 일이냐 하며

13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이르되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더라

본문 5절은 이들을 가리켜 "경건한 유대인"이라 칭합니다. 사실 누군가에게 '경건하다'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공동체 내에서 종교적 덕망과 자격을 충분히 인정받은 이들에게만 허락되는 명예로운 호칭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들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이국땅의 온갖 위협과 고난을 감내하며 예루살렘까지 찾아온, 남다른 열의를 지닌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시 타국에 흩어져 살던 수많은 유대인 중 평생에 단 한 번이라도 예루살렘 성전을 밟는 이가 얼마나 희귀했는지를 떠올려 본다면, 그들의 헌신이 결코 형식적인 수준이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흩어진 디아스포라 유대인들 중 극소수만이 이러한 희생을 치르며 예루살렘을 찾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들의 종교적 열의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성경이 이들을 향해 "경건한 자들"이라는 칭호를 부여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들이 율법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그 누구보다 앞장섰으리라는 추측은 결코 지나친 비약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성령의 임재를 부정하고 조롱했던 이들이 바로,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열심을 자부하던 그들이었습니다. 왜 이런 모순적인 결과가 나타난 것일까요? 앞서 언급했듯, 이들은 여전히 '속사람'의 변화를 경험하지 못한 채 '겉사람'의 종교적 관성에만 머물러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영적인 세계를 통찰하는 영적 지각력이 결여된 상태였던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2장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28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29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사람들의 시선에는 경건한 유대인으로 비쳤을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그저 표면적인 유대인일 뿐입니다. 영적인 세계를 보지 못한 채 '겉사람'의 상태, 즉 육신적인 그리스도인에 머물러 있다면 그는 참으로 비극적인 사람입니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믿는다 고백하지만, 실상 삶으로는 그분을 부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믿음은 본질에서 어긋나 있으며, 성경의 진리를 깨닫지 못한 채 종교적 관성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자신의 신앙을 진지하게 점검하지 않는 완고함과 폐쇄성이 그들의 영적 눈을 가리고 있는 것입니다.

💡 핵심 요약

형식적으로 '경건한 유대인'이라 불리던 이들조차 성령의 역사를 조롱했습니다. 이는 영적 지각력 없이 '겉사람'에 머물러 있을 때, 아무리 종교적 열심이 있어도 참된 믿음의 본질을 놓치고 영적 진리를 부정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영적인 기도 vs. 육신적인 기도

오직 영적인 사람만이 영적인 가치를 분별하고 사모할 수 있습니다. 만약 지금 당신이 성령께서 내주하시는 거듭난 존재라면, 성령의 임재와 충만함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 깊이 공감하고 계실 것입니다.

영적인 공감을 나누는 이들의 기도와 '겉사람'에 머물러 있는 이들의 기도는 그 궤를 완전히 달리합니다. 그 구체적인 차이는 무엇입니까? 한 사람은 보이지 않는 영원한 가치를 구하고, 다른 한 사람은 눈에 보이는 현세적인 만족만을 구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영적인 사람의 기도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핵심적인 지향점이 존재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자 갈망하며, 그분의 뜻이 삶에 이루어지기를 소망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며,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자신의 전 생애를 재정렬합니다.

반면, 하나님을 부르면서도 여전히 겉사람의 습성에 갇혀 있는 이들은 영적인 가치에 무관심합니다. 이들의 기도는 언제나 세속적인 결핍을 채우는 데 급급하며, 눈앞의 문제 해결과 육신적인 편안함, 안락한 누림이 기도의 주된 목적이 됩니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찾지만, 실상의 관심은 오직 자기만족에 쏠려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겉사람'들이 주류가 될 때, 성령의 역사는 가려지고 교회는 세속적 가치관으로 잠식됩니다. 결국 공동체는 인간적인 친교와 유희만 무성한, '생명력을 잃어버린 빈 껍데기'로 전락하고 마는 것입니다.

💡 핵심 요약

영적인 기도는 하나님의 영광과 뜻을 구하며 영원한 가치에 초점을 맞추지만, 육신적인 기도는 자기만족과 현세적 결핍 해소를 목표로 합니다. 육신적인 기도가 주를 이룰 때 교회는 생명력을 잃고 세속화됩니다.

영적 유아기와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삶

여러분은 지금 ‘속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여전히 ‘겉사람’에 머물러 있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명확합니다. 만약 당신이 영적인 진리를 분별하고 그 가치에 마음을 쏟고 있다면, 당신은 속사람으로 날마다 새로워지는 과정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눈에 보이는 현상에만 매몰되어 있다면, 영적인 세계를 인지하지 못한 채 성령의 임재와 충만함을 경시하는 부류에 속할 가능성이 큽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그 ‘경건한 유대인들’처럼 말입니다.

이 글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성령의 임재를 갈망하는 마음은 ‘성화(Sanctification)’의 과정에 있는 성도에게 나타나는 필연적인 열망이라는 사실입니다. 반대로 공동체 안에 머물면서도 영적인 사모함이 전혀 없다면, 안타깝게도 그는 성화의 길에 들어서지 못한 채 종교적 형식주의에 갇혀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영적인 가치를 사모하지 못하는 이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영적 유아기’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거듭난 것은 분명하나, 여전히 육신의 속성을 완전히 벗어내지 못한 채 그리스도 안에서 육신적인 가치관을 따라 살아가는 이들입니다.

즉, 중생(Regeneration)은 체험했으나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분명한 소망이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일지라도,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들을 반드시 성화(Sanctification)의 길로 인도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성장의 속도가 타인보다 다소 더딜 수는 있어도, 하나님께서는 결국 그들에게 합당한 믿음의 분량을 더하시어 당신의 영광에 이르게 하실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약속이 현재의 영적 방종을 정당화해주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과는 별개로, ‘순종’은 온전히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순종을 통해 이 땅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복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영적 유아의 옷을 벗고,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될 모습을 기대합니다.

앞서 언급한 '영적 유아기'의 성도들보다 더욱 안타까운 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상태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입니다. 에베소서 4장 30절은 우리에게 엄중히 경고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그렇다면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구체적인 삶의 모습은 무엇일까요? 이어지는 에베소서 4장 25절부터 32절은 거짓을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할 것, 분을 품지 말 것, 도둑질과 더러운 말을 버리고 선한 일을 할 것을 명시합니다. 또한 악독과 노함, 분냄과 비방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용서하라고 권면합니다.

여러분의 삶에는 이러한 구습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까? 성격과 기질이라는 핑계 뒤에 숨어 이러한 습관들이 반복적으로 표출되고 있지는 않습니까? 만약 이러한 삶이 성찰 없이 지속된다면, 영적인 가치는 점차 여러분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게 될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맡은 '직분'이나 입술로 내뱉는 '고백'이 곧 자신의 믿음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삶의 태도를 돌이키지 못한 채 종교적 형식에만 의존한다면, 그 사람의 내면에는 영적인 생명력이 아닌 세상의 욕심만이 가득하게 될 뿐입니다.

💡 핵심 요약

성령의 임재를 갈망하는 것은 성화의 증거이며, 영적 유아기와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삶은 경계해야 합니다. 직분이나 고백만으로는 참된 믿음이 될 수 없으며, 육신의 습관을 버리고 영적인 생명력을 회복해야 합니다.

성령의 사람과 참된 영적 안목

기억하십시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향해 나아가는 이는 '겉사람'이 아닌 '속사람'으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지금 스스로 질문해 보십시오. "나는 과연 속사람으로 살고 있는가?" 만약 여전히 겉사람의 습성에 머물러 있다면, 하나님 앞에서 그 실체를 인정하고 근본적인 영적 돌이킴을 시도해야 합니다. 겉사람의 상태로는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기는커녕, 도리어 성령의 역사를 목도할 때 당황하거나 조롱하게 될 위험이 큽니다.

이들이 절대 가치처럼 여기는 신앙의 전통은 자칫 '죽은 정통(Dead Orthodoxy)'으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교리와 형식은 갖추었으되 성령의 생명력이 결여된, 가장 경계해야 할 영적 고착 상태입니다. 겉으로는 말씀을 지키는 도덕적 신앙인처럼 보일지 모르나, 그 내면에는 '나의 열심으로 삶의 문제를 해결받겠다'는 지독한 자기중심성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참된 성령의 사람은 영적인 안목이 열린 자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부수적인 선물(건강, 부, 편안함)이 아니라, '하나님 그분 자신'을 가장 갈망하고 기뻐합니다. 이 특별한 은혜가 임할 때, 우리의 기도는 눈앞의 문제 해결을 넘어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것인가"라는 거룩한 갈망으로 변화됩니다.

성령은 바로 이러한 믿음과 삶의 토대 위에 임하십니다. 말로는 성령을 사모한다 하면서도 여전히 겉사람의 욕망에 매몰되어 있지는 않은지, 오늘 전해진 말씀을 거울삼아 우리의 중심을 정직하게 비추어 보기를 소망합니다.

💡 핵심 요약

성령의 사람은 겉사람이 아닌 속사람으로 살며, 하나님 그분 자신을 가장 갈망합니다. 이러한 영적 안목이 열릴 때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거룩한 갈망으로 변화됩니다. '죽은 정통'에 갇히지 않고 중심을 비춰봐야 합니다.

속사람 강화 포인트와 영적 자가 점검

오늘 말씀을 토대로 속사람 강화 포인트 세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1. 나의 기도를 진단해 보기 (영적 갈망의 회복)

나의 기도를 찬찬히 들여다보세요. 나의 기도가 이 땅의 필요를 채우는 데에만 머물러 있는지, 아니면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자 하는 목마름이 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는 것입니다. 내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에 나를 온전히 맡겨드리는 기도로 나아가야 합니다.

2. 일상에서 성령님의 내주하심을 의식하기

속사람이 날로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매 순간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유진 피터슨(Eugene Peterson)목사의 말처럼 '오랜 순종'은 거창한 이벤트가 아니라, 매일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 성령님의 세미한 음성에 귀 기울이고, 그분과 동행하려는 소박하고 끈기 있는 발걸음입니다.

3. 값싼 은혜를 넘어, 십자가의 길을 기뻐하기

이 말은 겉사람이 구하는 육신적인 편안함에 안주하지 않는 것입니다. 회개와 제자도 없이 주어지는 위로를 '값싼 은혜'입니다. 진짜 성령의 충만을 받은 사람은 고난이나 세상의 조롱(본문 13절)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내 안에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기꺼이 십자가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됩니다.

외견상 그럴듯한 믿음의 언행을 보일지라도, '겉사람'의 실체는 결국 무의식중에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은연중에 배어 나오는 말과 습관이야말로 그 사람의 영적 주소를 가감 없이 증명하기 때문입니다. 참된 성령의 사람은 결코 외형에 머물지 않고 '속사람'으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이제 글을 마무리하며, 여러분의 영혼을 비출 몇 가지 자가 점검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이 질문들 앞에 정직히 서 보십시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신앙적 실체를 직시하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영적인 해답을 발견하는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나의 영적 주소를 묻는 네 가지 질문]

* 나는 하나님이 주시는 부수적인 복이 아니라, 하나님 그분 자신을 알고자 하는 타는듯한 갈망이 있는가?

* 말씀이나 타인을 통해 나의 허물이 드러날 때, 방어적인 태도로 일관하는가 아니면 이를 회개의 기회로 삼는가?

* 내 기도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하나님의 영광인가, 아니면 오직 당면한 문제의 해결인가?

* 영적인 본질을 꿰뚫는 선포 앞에서 심령의 부담과 거부감을 느끼는가, 아니면 참된 영혼의 기쁨을 누리는가?

성령의 임재와 충만함을 사모하는 것은 특정 계층만이 누리는 전유물이 아니라, 거듭난 영혼에게 나타나는 필연적인 열매입니다. 물론 그 갈망의 깊이는 성화의 단계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만약 영적인 세계에 완전히 무관심하다면 그것은 매우 위험한 영적 신호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날마다 새로워지는 '속사람'으로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지금 여러분의 내면에 성령을 향한 갈망이 있다면, 그 갈망 자체가 이미 여러분이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강력하고도 아름다운 증거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종교적 열심을 내세우는 두 부류의 삶을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는 과연 어느 쪽에 더 가깝습니까? 이 질문을 깊이 묵상한다면, 자칫 빠지기 쉬운 영적 매너리즘과 외식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목자의 심정으로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현재의 종교적 행위나 익숙해진 습관에 안주하여 스스로를 속이지 마십시오. 나의 삶과 가치관이 어디에 뿌리를 두고 정의되고 있는지 끊임없이 돌아보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보이는 세상의 가치로 규정되는 존재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원한 나라를 믿음으로 바라보는 성령의 사람들입니다. 겉사람의 껍데기를 벗고 속사람의 생명력으로 살아가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핵심 요약

속사람 강화를 위한 기도 진단, 성령 의식, 십자가의 길 기쁨 세 가지 포인트를 제시하며, 영적 자가 점검 질문을 통해 자신의 영적 주소를 정직하게 돌아볼 것을 권면합니다. 성령의 사람은 외형이 아닌 속사람으로 살아가며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는 자들입니다.

묵상과 점검

오늘 설교를 통해 당신의 '영적 주소'는 어디에 더 가깝다고 느껴지십니까? '겉사람'에 머물러 있었다면 어떤 부분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나요? 성령의 임재와 충만함을 갈망하는 마음이 당신 안에서 얼마나 뜨겁게 타오르고 있는지 정직하게 점검해 봅시다. 하나님 그분 자신을 구하는 기도가 당신의 삶에 얼마나 자리 잡고 있습니까?

이번 주 실천 계획

1. 매일 5분이라도 조용한 시간을 갖고, 성령님의 임재를 의식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기도를 드려봅시다. (기도 진단)
2. 일상 속에서 죄의 유혹이나 육신적인 습관이 올라올 때, 에베소서 4장 25-32절의 말씀을 떠올리며 성령님을 근심하게 하지 않도록 즉시 회개하고 돌이키는 연습을 해봅시다. (성령님 의식)
3. 값싼 은혜가 아닌 십자가의 길을 기쁨으로 선택하는 한 가지 구체적인 결단을 해봅시다. 예를 들어, 개인적인 불편함이나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누군가를 섬기거나 복음을 전하는 일에 나서보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 기쁨)

함께 기도합시다.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 저희의 영적 상태를 돌아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저희 안에 '겉사람'의 습관과 욕심이 있다면 정직하게 회개하고 주님께 내려놓습니다. 오직 성령님으로 충만하게 하사, 영적인 안목이 열려 하나님을 가장 갈망하며 '속사람'으로 살아가는 참된 성령의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영광만을 드러내는 복된 통로가 되게 하실 줄 믿으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모퉁잇돌교회 | 담임목사: 강병호

본 설교는 [20260322] 주일 예배에서 선포되었습니다. 😊

이 설교문은 교육 및 은혜 나눔의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