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일 설교 –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인내로 진리 안에서 헌신하는 교회(에베소)1
핵심 메시지
진리와 헌신, 인내를 지켰던 에베소 교회를 통해 우리가 회복해야 할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지 살피고, 그리스도의 옷을 입어 사랑으로 온전해지는 공동체의 길을 모색합니다.
1. 교회의 본질과 오늘의 현실
오늘부터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누려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 우리가 함께 소망하는 참된 공동체는 어떤 곳이어야 할까요? 올해 우리 교회의 기도 제목인 “그리스도 안에서”를 온전히 이루어가는 것 역시,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교회를 세워가는 여정과 맥을 같이할 것입니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 비로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 공동체의 면모를 온전히 갖추어 나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교회란 대체 어떤 곳이어야 합니까? 교회는 무엇을 하는 곳이며, 본질적으로 무엇입니까? 이 질문에 대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답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성경 속에 등장하는 모델들을 살펴보려 합니다. 안타까운 점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이상적인 모델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깊은 경각심을 주는 '부정적인 모델'들도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교회 역사를 돌아볼 때, 성경은 이상적인 교회보다 오히려 우리에게 교훈을 주는 부족한 교회들의 모습을 더 많이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한국 교회의 현실을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라는 이름으로 모인 공동체 중에, 과연 성경적인 좋은 모델이 많을까요, 아니면 하나님 앞에서 바르지 못한 모습이 더 많을까요? 영적이어야 할 교회에서 오히려 육신의 냄새가 가득하고, 세상보다 더 세상적인 일들이 벌어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교회가 정말 영적인 곳인가?"라는 의문을 품게 만드는 일들이 우리 주변에 너무나도 많다는 사실이 참으로 가슴 아픈 현실입니다.
얼마 전 부활절 예배 중에 한 대형 교회가 대통령을 강단으로 불러내어 인사를 나누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으셔야 할 거룩한 예배의 자리에서 사람을 세우고 박수갈채를 보내는 모습을 보며, 예배의 주인공이 하나님이 아닌 사람으로 바뀌어버린 우리 교회들의 비루한 현실 앞에 참담한 심정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좌파나 우파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의 중심과 주인공이 누구여야 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예배라는 가장 거룩한 시간에 어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단 말입니까? 더욱 비참한 것은, 이러한 상황을 대하는 우리 교계와 성도들의 태도입니다. 분명한 문제의식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지만,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라며 영적인 어두움 속에서 그 심각성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처한 처참한 영적 실상 아니겠습니까?
교회가 이토록 심각하게 타락하고 예배의 거룩함이 훼손되는 상황이 바로 우리의 현실입니다. 자정 능력조차 상실해버린 것처럼 보이는 이 시점에, 우리는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우리는 무엇을 잃어버렸기에 교회의 참모습을 이토록 망각하게 된 것일까?
지금처럼 영적으로 심각한 위기에 놓인 때일수록, 우리는 성경으로 돌아가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기뻐하시는 교회의 본질을 다시 배워야 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우리부터,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 대한 바른 지혜와 거룩한 소망을 회복해 나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핵심 요약
오늘날 교회가 세속화되고 예배의 대상이 혼탁해진 현실을 직시하며, 다시 성경을 통해 교회의 본질을 회복해야 합니다.
2. 에베소 교회: 정통은 지켰으나 심장은 식어버린 모델
자, 그러면 이제 첫 번째 모델인 에베소 교회를 통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어떤 곳이어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오늘은 먼저 에베소 교회를 통해 칭찬받을 만한 모습을 확인하고, 다음 주에는 주님께 책망받은 내용이 무엇인지 살피며 우리의 영적 상태를 입체적으로 점검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여러분, 에베소 교회는 어떤 교회였을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 이 교회를 한 문장으로 정의한다면, “정통은 지켰으나 심장은 식어버린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참으로 성실했고 뜨거운 열정을 품었던 공동체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께 칭찬받았던 그들의 열심과, 그럼에도 주님께서 안타까워하시며 책망하셨던 그 깊은 마음을 조심스럽게 나누고자 합니다. 두 주에 걸쳐 에베소 교회를 반면교사 삼아 우리가 바르게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인지, 결코 용납해서는 안 될 것은 무엇인지 배우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먼저 에베소 교회가 하나님께 칭찬받은 것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인지부터 보겠습니다. 본문 2~3절입니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요한계시록 2:2-3)
💡 핵심 요약
에베소 교회는 진리를 지키는 일에는 탁월했으나 주님을 향한 첫사랑이 식어버린, 양면성을 지닌 모델입니다.
3. 주님이 인정하시는 성실함: 행위와 수고와 인내
2절과 3절 말씀을 보십시오. 에베소 교회가 얼마나 바르고 영적인 공동체였는지 절로 느껴지지 않습니까? 주님께서는 가장 먼저 그들의 “행위와 수고와 인내”를 언급하십니다. 이 말씀은 에베소 교회가 주님 앞에서 얼마나 성실하고 진실하게 충성을 다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아래 모인 성도들의 삶이 그토록 정직하고 성숙했다는 사실이 이 짧은 문장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이런 영적 성숙함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 구절을 통해 에베소 교회의 분위기를 짐작해 보면, 그들은 매우 열정적으로 일하는 교회, 즉 주의 사역을 위해 자신을 드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혹시 이 대목에서 "교회가 사역에만 너무 치중한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실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에베소 교회의 사역은 단순히 분주함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 이면에는 주님의 이름을 위해 묵묵히 견디고, 게으르지 않게 헌신하며, 결코 포기하지 않는 끈기가 있었습니다. 주님은 바로 그 '지치지 않는 성실함'을 높이 평가하신 것입니다.
또 에베소 교회는 단순히 일만 하는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성경적 가치관에 입각한 탁월한 분별력이 있었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그들은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않았고, 자칭 사도라 하는 자들의 거짓됨을 시험하여 날카롭게 드러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말씀을 바르게 배웠을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을 삶의 기준으로 삼아 교회의 순결함을 지켜낸 '진리의 파수꾼'과 같은 교회였습니다.
또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교회였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들이 묵묵히 참고 견딘 단 하나의 이유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자신의 안위나 명예를 위한 결단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예수님 때문에 핍박을 감내했고, 나태함과 거리를 둔 채 성실한 믿음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은 어떠한 외부 환경에도 흔들리지 않는 담대한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정리하자면, 에베소 교회는 진리가 있고, 헌신이 있으며, 인내가 살아있는 교회였습니다. 여기까지 들으면 감탄이 절로 나오지 않습니까? "이 정도면 건강한 교회의 모델로 충분하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들 만큼, 에베소 교회는 교회의 정체성을 분명히 드러내는 바른 공동체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렇게 주를 향한 열심과 진리 안에서 성실했던 에베소 교회를 통해 배워야 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갖추어야 할 핵심'은 무엇일까요? 바로 교회의 모든 사역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아래에 있는 인내와 수고, 섬김과 진리 수호는 교회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소중한 가치들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뼈아픈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수많은 사역과 활동, 체계적인 양육 시스템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라는 핵심이 빠져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겉보기엔 활기찬 교회처럼 보일지라도, 속은 텅 빈 채 요란한 소리만 내는 '빈 냄비'와 다를 바 없습니다.
사역은 활발하고 교회는 쉼 없이 움직이는데, 왜 속은 텅 비어버린 걸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라는 가치를 지키고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혹시 주님을 '위해서' 일한다는 명목으로, 주님 '안에서' 일하는 본질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요?
예수님 없는 사역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열심히 모여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데 정작 그곳에서 예수님의 친밀함이나 온유함이 느껴지지 않는 공동체가 우리 주변에 너무 많지 않습니까? 일만 남고 기쁨은 사라진 채, 의무감과 책임감만 덩그러니 남은 사역현장 말입니다.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쁜 사역과 계획들 속에 정작 중심에 계셔야 할 예수님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성과와 사람들의 평가로 채워버린 것입니다.
- 열심은 있는데 긍휼이 없지는 않습니까?
- 정확함은 있는데 사랑이 없지는 않습니까?
- 헌신은 있는데 온유함이 사라지지는 않았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역이 활발하다고 해서 좋은 교회,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라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아무리 겉보기에 훌륭한 모습들을 갖추고 있어도, 그 모든 일이 예수님 안에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단지 '일'에 불과할 뿐입니다.
💡 핵심 요약
에베소 교회는 성실한 사역과 진리 분별력으로 칭찬받았지만, 교회의 참된 본질은 단순히 '열심히 일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4. 검증의 리트머스: ‘그리스도의 옷’을 입으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과연 예수님 안에 거하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이를 검증하는 영적인 리트머스 시험지가 있습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옷을 입었는가'입니다. 조금 생소하게 들리실지 모르지만,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골로새서 3장 12절에서 14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여기서 '옷 입으라'는 표현은 로마서 13장 14절의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라는 말씀과 맥을 같이 합니다. 우리가 입어야 할 그리스도의 옷은 구체적으로 긍휼, 자비, 겸손, 온유, 그리고 오래 참음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옷을 입고 계십니까?
만약 우리가 이 옷을 입고 사역한다면, 그 모든 일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바르게 세우는 귀한 열매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사역을 돌아보십시오. 긍휼한 마음과 너그러운 자비,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겸손, 그리고 감정과 기질을 넘어선 오래 참음으로 일하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과 우리 공동체는 이미 성숙의 단계에 접어든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교회의 모든 사역은 나를 증명하는 행위가 아니라, 이미 받은 사랑에 대한 감사여야 합니다. 교회는 내가 원하는 사람들만 모인 곳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연결해주신 지체들을 인내하며 감내하는 '은혜의 현장'입니다. 여러분이 봉사하는 그 자리에 지금 예수님의 따뜻한 시선이 머물고 있습니까, 아니면 나의 성취감과 타인의 인정이 머물고 있습니까?
이렇게 그리스도의 옷을 입은 사람들은 다툼이 생겼을 때 다르게 반응합니다. 13절을 보십시오.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이라며 교회 안의 갈등을 자연스럽게 언급합니다. 사역 스타일의 차이, 생각이 다르고, 성향이 다르고, 표현 방식도 다르고, 사소한 말투 하나까지... 사실 교회에서 불만이 생기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로 옷 입은 성도들은 그럴 때마다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서로'라는 단어입니다. 일방적인 용납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서로가 함께하지 않는 용서는 일시적인 감정 다스림일 뿐,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관계의 균열을 깊게 만듭니다.
그러면 '서로 하는 용납'은 어떻게 시작될까요? 바로 상대방을 향한 상식적인 이해에서 출발합니다. 서로 이해하지 않기 때문에 오해와 편견이 쌓이고, 나쁜 마음으로 상대를 판단하게 됩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은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나를 먼저 용납하셨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상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싶으시다면, 속에서 올라오는 비난의 말들을 지워버리십시오. "거봐, 내 이럴 줄 알았어", "저 사람은 여전히 변하지 않는군"과 같은 편견 대신, "속이 상해서 그랬을 거야", "그런 의도로 말한 게 아닐 거야"라고 생각해보십시오. “저 사람은 왜 저럴까?”가 아니라 “무슨 아픔이 있었을까?”를 생각합니다. 이것이 서로를 용납하는 능력의 시작입니다.
💡 핵심 요약
진정한 사역은 그리스도의 옷(긍휼, 자비, 겸손 등)을 입고 서로를 용납하며 그리스도의 용서를 실천하는 현장이 되어야 합니다.
5. 성령의 은혜로 완성되는 용서와 사랑
나아가 진정한 용서는 감정의 앙금을 버리고 상대를 품는 것입니다. 단순히 "용서했어"라고 말만 하는 것은 '용서 코스프레'에 불과합니다. 속으로는 미워하면서 겉으로만 용서한 척하는 이중성은 금세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잠언 26장 26절의 말씀처럼 “속임으로 그 미움을 감출지라도 그의 악이 회중 앞에 드러나리라” 이런 이중성은 하나님 앞에 악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말과 마음이 따로 노는 이중성 때문에 많은 성도가 하나님 앞에서 몸부림칩니다. 그나마 이렇게 자신의 이중성을 깨닫고 괴로워하며 몸부림치는 사람은 희망이 있습니다. 결국 이 지점에서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은 '성령의 은혜'임을 알게 됩니다. 우리의 노력만으로는 결코 완벽히 용납하고 용서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의지는 늘 한계에 부딪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께 도움을 요청하십시오. 예수님을 기억하며 노력하되, 반드시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끝까지 승리하는 비결임을 기억합시다.
진짜 용서는 단순히 “괜찮아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상대를 품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로는 미워하는 것은 성경적 용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말보다 마음을 보십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인간의 힘만으로는 끝까지 사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다스리실 때 비로소 우리는 진짜 용납과 용서를 배우게 됩니다.
이렇게 몸부림칠 때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만지시고 다스려주시면, 그토록 힘들고 어렵던 용납과 용서가 자연스러운 삶의 고백이 됩니다. 진실한 사랑이 마음에서 우러나오면, 미웠던 사람이 불쌍하고 안쓰럽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전에는 그 사람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눈에 거슬렸다면, 이제는 어떤 모습조차도 넉넉히 품을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것입니다.
기억합시다.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닙니다. 상대를 끝까지 품어내는 복음의 능력입니다. 진리만 있고 사랑이 없다면 교회는 차가워집니다. 사역은 많은데 사랑이 없다면 공동체는 메말라갑니다. 그러나 사랑이 있는 교회는 서로를 살립니다. 실수한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웁니다. 연약한 지체를 품어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바로 14절 말씀처럼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는 약속이 우리 삶에 실현되는 과정입니다.
여러분, 용납과 용서가 더해지면 결국 '사랑'이라는 열매가 맺힙니다. 그 사랑으로 서로가 서로를 굳게 연결하는 공동체야말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참된 모습이 아닐까요? 주님께서 에베소 교회를 향해 “너희의 믿음의 삶을 내가 아노라”라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우리 또한 하나님께 “내가 너희의 믿음의 수고를 안다”는 인정을 받는 귀한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핵심 요약
성령의 은혜로 진정한 용서와 용납을 실천할 때, 사랑의 띠로 하나 되는 참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세워집니다.
결론: 참된 영성 회복의 길
오늘 우리는 성경을 통해 에베소 교회가 지켜야 했던 참된 가치를 보았습니다. 이제 우리의 믿음과 삶을 돌아봅시다. 과연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의 옷을 입은 성숙함이 있습니까?
신학적으로 정통하고, 사역이 활발하며, 질서와 시스템이 잘 잡힌 교회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마음과 생각, 그분의 의지를 품고 교회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겉으로 드러나는 외적인 모습에만 치중하느라 기도의 눈물이 사라지고,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갈망이 희미해진다면, 우리 역시 에베소 교회처럼 ‘첫사랑을 잃어버릴’ 위험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 교회가 에베소 교회의 그 성실한 열심을 본받되, 그 위에 그리스도의 따뜻한 긍휼과 자비의 옷을 입고 서로를 온전하게 매는 사랑의 공동체로 든든히 세워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의 부족하고 연약한 부분을 서로 보듬으며 오직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우는 일에 마음을 모읍시다. 참된 영성을 회복하여 이 시대에 꼭 필요한 하나님의 교회로 우뚝 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 묵상과 점검
1. 나는 현재 어떤 '옷'을 입고 교회의 사역에 참여하고 있습니까? 내 열심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의 온유함과 긍휼이 있습니까?
2. 교회 안에서 나를 힘들게 하거나 불만을 품게 하는 지체가 있습니까? 그를 향해 "왜 그럴까?"라는 판단 대신 "무슨 아픔이 있을까?"라는 이해의 시선을 가져본 적이 있습니까?
3. 겉으로만 용서하는 척하는 '용서 코스프레'를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진심으로 상대를 품기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까?
✅ 이번 주 실천 계획
1. 골로새서 3:12-14 말씀을 매일 묵상하며, 사역과 봉사의 현장에서 '긍휼과 자비의 옷'을 입기로 결단합니다.
2. 이번 한 주 동안, 의도적으로 관계가 서먹하거나 불편했던 지체에게 따뜻한 격려의 말이나 문자 한 통을 먼저 보냅니다.
3. 사역의 결과보다 과정에서 주님과 동행하고 있는지 점검하며, 하루에 10분 이상 교회의 사랑과 연합을 위해 집중적으로 기도합니다.
🙏 함께 기도합시다.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오늘 에베소 교회의 모습을 통해 우리 자신과 교회를 돌아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주를 향한 열심과 진리를 지키는 성실함은 본받되, 그 중심에 사랑과 긍휼이 빠지지 않도록 우리 마음을 붙들어 주옵소서. 내 힘과 의지로는 타인을 온전히 용납할 수 없음을 고백하오니, 성령께서 임재하셔서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옷을 입혀 주시고 사랑의 띠로 서로를 매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교회가 겉만 화려한 공동체가 아니라, 주님을 향한 첫사랑이 살아있고 서로를 깊이 품어내는 참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모퉁잇돌교회 | 담임목사: 강병호
본 설교는 [20260517] 주일 예배에서 선포되었습니다. 😊
이 설교문은 교육 및 은혜 나눔의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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