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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안내서

성령을 소멸하지 않는 것은 무엇을 말하나요?

by S D G(Soli Deo Gloria) 2025. 9. 10.

성령을 소멸하지 않으려면: 깨어있는 심령의 다섯 가지 원칙

성령을 소멸하지 않으려면: 깨어있는 심령의 다섯 가지 원칙

서론: 꺼져가는 불씨 앞에서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한 편지 말미에 짧지만 강력한 명령을 남깁니다.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데살로니가전서 5:19). 이 말씀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옵니까? 혹시 우리 안에 한때 뜨겁게 타올랐던 첫사랑의 불씨가, 세상을 향한 열정의 불꽃이, 거룩을 향한 갈망의 화염이 세상의 풍파와 개인의 나태함 속에서 희미해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많은 그리스도인이 영적 침체를 경험하며 '내 안의 성령께서 침묵하시는 것 같다'고 토로합니다. 그 침묵의 원인이 어쩌면 우리 스스로 성령의 불을 '소멸'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이 글은 단순한 영적 지침이나 자기 계발적 조언을 넘어,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의 불을 다시 활활 타오르게 하는 구체적이고 신학적인 원리들을 탐구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먼저 데살로니가전서의 역사적, 성경적 배경 속에서 '성령을 소멸한다'는 것의 참된 의미를 깊이 있게 분석할 것입니다. 꺼져가는 불씨를 되살리고 그 불을 더욱 뜨겁게 만드는 5가지 핵심 원칙을 체계적으로 제시할 것입니다. 이 여정을 통해  여러분이 자신의 영적 상태를 진단하고, 성령님과의 살아있는 관계를 회복하는 실제적인 통찰을 얻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I. 성령을 소멸한다는 것의 참된 의미

'성령을 소멸한다'는 표현은 자칫 성령님이라는 존재 자체를 우리가 없애거나 사라지게 할 수 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성경의 전체적인 가르침과 맞지 않습니다. 이 개념의 본질을 명확히 규명하기 위해, 우리는 원어의 의미, 성경적 비유, 그리고 데살로니가전서의 구체적인 문맥 속으로 깊이 들어가야 합니다.

1. 원어(헬라어) 분석: '불을 끄다' (σβέννυμι)

사도 바울이 사용한 '소멸하다'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스벤뉘미(σβέννυμι)'입니다. 이 단어의 일차적 의미는 매우 직접적이고 명확합니다. 바로 '불이나 등불을 끄다(quench, extinguish)'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문자 그대로 불을 끄는 행위를 묘사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마가복음 9장 48절에서 "꺼지지 않는 불"을 묘사할 때나, 에베소서 6장 16절에서 믿음의 방패로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며"라고 할 때 이 단어의 계열이 사용되었습니다.

따라서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는 명령은, 성령님 자체를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있다는 의미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이는 우리 안에서 '불'과 같이 역사하시는 성령의 활동, 감동, 그리고 역동적인 나타남을 억제하거나 차갑게 만드는 행위에 대한 경고입니다. 이는 성령의 불길을 약화시키거나 제한하지 말라는 의미로 이해해야 합니다. 태양은 항상 빛나지만 먹구름이 그 빛을 가리듯,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의 능력은 영원불변하지만 우리의 불순종과 무관심이라는 구름이 그 영향력의 나타남을 가로막을 수 있는 것입니다.

2. 성령의 '불' 비유: 왜 불인가?

성경은 여러 곳에서 성령을 '불'에 비유합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서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라 예언했고(마태복음 3:11), 오순절 날 성령이 강림하실 때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각 사람 위에 임했습니다(사도행전 2:3). 그렇다면 성경은 왜 성령의 역사를 불의 이미지로 설명할까요? 불의 속성을 통해 우리는 성령의 사역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 정화(Purification): 불은 불순물을 태워 없애고 금속을 정련합니다. 마찬가지로 성령께서는 우리 내면의 죄악된 본성과 동기를 태우시고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정화의 사역을 하십니다.
  • 조명(Illumination): 불은 어둠을 밝혀 길을 비춥니다. 성령께서는 진리의 영으로서 우리의 어두운 지성을 밝히사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깨닫게 하십니다.
  • 열정(Passion): 불은 뜨거운 열기를 발산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차가운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과 열정을 불어넣으시고, 예배와 사역에 대한 열심을 주십니다.
  • 능력(Power): 불은 강력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복음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부여하십니다.

성령이 불과 같이 역사하여 인간의 영혼을 빛나게 하고, 소생시키며, 순결케 한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성령을 소멸한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성령의 정화, 조명, 열정, 능력의 사역을 우리 삶에서 거부하고 억누르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3.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것'과의 구별

성경은 ';성령을 소멸하는 것' 외에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것'(에베소서 4:30)에 대해서도 경고합니다. 이 둘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지만 신학적으로 미묘한 차이를 가집니다. 이 차이를 이해하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성령님과 동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줍니다.

이 둘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명확히 설명합니다.

  • 성령을 근심하게 함 (Grieving the Spirit): 이것은 성령의 '성품(Character)'과 관련이 있습니다. 성령은 인격적인 하나님이시기에 감정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가 악독, 노함, 음란, 거짓말 등 죄를 지을 때, 거룩하신 성령의 인격이 슬퍼하시고 고통스러워하십니다. 이는 마치 자녀의 탈선에 부모가 마음 아파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관계적인 측면의 손상입니다.
  • 성령을 소멸함 (Quenching the Spirit): 이것은 성령의 '사역(Work/Manifestation)'과 관련이 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통해 나타내고자 하시는 능력, 은사(예언, 방언 등), 기도나 순종에 대한 감동 등을 우리가 의지적으로 억누르고 방해할 때 발생합니다. 이는 성령의 활동을 제한하고 그분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을 막는 행위입니다.

간단히 말해, '근심'은 우리의 죄가 성령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것이고, '소멸'은 우리의 불순종이 성령의 손과 발을 묶는 것입니다. 물론 이 둘은 종종 함께 일어납니다. 우리가 죄를 지어 성령을 근심하게 하면, 자연스럽게 그분의 사역에 대한 민감성을 잃고 그분의 감동을 소멸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4. 데살로니가전서의 문맥적 이해: 예언을 멸시하는 태도

바울의 이 명령을 가장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데살로니가전서 5장의 전체적인 문맥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19절의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라는 명령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바로 뒤이어 20절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21절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22절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는 권면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당시 데살로니가 교회는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오해로 인해 혼란을 겪고 있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임박한 재림을 이유로 일상적인 삶을 포기했고, 다른 한편에서는 재림에 대한 거짓된 예언들이 난무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교회는 거짓 예언이나 무질서한 은사 사용에 대한 반작용으로, 성령의 모든 초자연적 역사, 특히 '예언'의 은사 자체를 아예 억제하거나 무시하려는 극단적인 경향을 보였을 수 있습니다.

즉, 바울은 "성령의 불을 끄지 말라. 특히 예언과 같은 성령의 나타남을 무시하지 말라. 그러나 모든 것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지도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분별하여(헤아려)' 좋은 것은 붙잡고 악한 것은 버리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령 소멸'은 일차적으로, 질서와 분별이라는 명목 아래 성령의 역동적인 활동과 은사의 나타남을 전면적으로 거부하고 억누르려는 교회의 잘못된 태도에 대한 경고였습니다. 이는 오늘날에도 이성과 질서를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성령의 신비하고 역동적인 사역을 두려워하거나 제한하려는 교회에 동일한 경고를 줍니다.


II. 성령을 소멸하지 않는 다섯 가지 원칙

성령의 불은 한번 붙었다고 해서 저절로 타오르는 자동난로가 아닙니다. 그것은 세심한 관리와 지속적인 연료 공급이 필요한 모닥불과 같습니다. 성령의 불을 꺼뜨리지 않고 오히려 더욱 활활 타오르게 하기 위한 5가지 구체적인 신앙 원칙을 신학적 의미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심령의 재를 제거하라: 깨어있는 회개와 기도의 삶

활활 타던 모닥불도 재가 쌓이면 공기의 흐름을 막아 결국 꺼지고 맙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심령에 쌓이는 영적인 '재'는 성령의 불길을 막는 가장 큰 원인입니다. 이 재는 해결되지 않은 죄, 과거의 상처에서 비롯된 원망과 쓴 뿌리, 세상에 대한 염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영적 무관심과 나태함 등입니다. 이 재를 제거하는 가장 효과적이고 본질적인 행위는 바로 '깨어있는 회개와 기도'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도는 단순히 나의 필요를 아뢰는 청원 기도를 넘어섭니다. 그것은 시편 51편에서 다윗이 고백했듯,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시 51:17)라는 자세입니다. 복음은 자신의 죄와 무력함을 처절하게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깨어진 모습 그대로 나아가는 '깨어진 심령'만이 들을 수 있는 진리입니다. 기도는 바로 이 영적인 재를 하나님의 보좌 앞에 정직하게 쏟아내고, 그분의 용서와 정결케 하심을 구하며 심령의 밭을 기경하는 행위입니다. 예수님께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마 26:41)고 하신 명령은, 기도가 우리를 죄의 유혹으로부터 지키고 성령의 불이 다시 타오를 수 있도록 심령을 정결하게 하는 핵심적인 통로임을 보여줍니다.

2. 말씀을 땔감으로 삼으라: 성령의 역사는 말씀을 통해

불이 계속 타오르기 위해 마른 땔감이 필수적이듯, 우리 안에서 성령의 불이 왕성하게 타오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땔감'이 지속적으로 공급되어야 합니다. 성령과 말씀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관계입니다. 이 둘의 관계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의 신앙은 양 극단으로 치우칠 위험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진리의 영"(요 16:13)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성령의 주된 사역 중 하나는 우리로 하여금 기록된 말씀인 성경을 깨닫게 하고, 그 진리대로 살도록 조명하시는 것입니다. 반대로,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요 6:63)고 하셨습니다. 말씀은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주된 통로이자 재료입니다. 말씀 없는 성령 체험은 주관적인 신비주의로 흐르기 쉽고, 성령의 조명 없는 말씀 연구는 차가운 지식주의나 율법주의에 머무르게 됩니다. 성령의 불은 말씀이라는 장작 위에서 가장 밝고 뜨겁게 타오릅니다.

따라서 성령의 충만함을 유지하기 위한 적극적인 말씀 생활은 필수적입니다. 이는 단순히 하루 할당량을 채우듯 성경을 읽는 것을 넘어섭니다. 읽은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며, 삶의 구체적인 상황에 적용하는 전 과정이 포함됩니다. 이렇게 말씀을 꾸준히 '땔감'으로 공급할 때, 우리 안의 성령의 불은 꺼지지 않고 계속해서 타오를 것입니다.

3. 은사를 존중하고 사용하라: 교회의 덕과 복음을 위한 도구

앞서 살펴보았듯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주어진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는 명령은 "예언을 멸시하지 말라"는 권면과 직접적으로 연결됩니다. 이는 성령의 불을 꺼뜨리는 주된 행위 중 하나가 바로 성령께서 교회에 주신 은사(카리스마, χάρισμα)를 무시하거나 억누르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다양한 은사를 주셨습니다. 이는 결코 개인의 영적 우월감을 과시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사도 베드로는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 4:10)고 권면합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7)고 말하며, 모든 은사의 궁극적인 목적이 '교회의 덕을 세우는 것'(고전 14:12)에 있음을 분명히 합니다. 즉, 성령의 은사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교회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우리에게 맡겨진 '선한 청지기의 도구'입니다. 이 도구를 창고에 넣어두고 사용하지 않는 것은 성령의 역사를 스스로 제한하는 '소멸'의 행위입니다.

물론 바울은 은사의 '남용' 또한 엄격히 경계했습니다. 그래서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라"(살전 5:21)는 분별의 원칙을 함께 제시한 것입니다. 은사를 억제하는 '소멸'의 태도와,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남용'의 태도 모두를 피해야 합니다. 사랑 안에서 질서 있게,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방향으로 각자에게 주어진 은사를 적극적으로 사용할 때, 성령의 불은 개인의 삶과 교회 공동체 안에서 가장 건강하고 강력하게 타오를 것입니다.

4. 성령의 인격과 임재를 민감하게 인식하라: 나의 무능함 속 그분의 권능

현대인들은 종종 성령을 비인격적인 힘이나 능력으로 오해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증언하는 성령은 지정의를 가지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 위격, 즉 '인격적인 하나님'이십니다. 인격이시기에 그분은 근심하시고(엡 4:30),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며(롬 8:26), 우리를 가르치십니다(요 14:26). 성령을 소멸하지 않는 삶의 핵심은 바로 이 성령의 인격성을 깊이 존중하고 그분의 임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입니다.

비둘기가 작은 소리나 위협에도 쉽게 놀라 날아가 버리듯, 민감하신 성령께서는 우리의 작은 죄나 교만, 불순종, 그리고 세상을 향한 집착에도 그 충만한 임재의 나타남을 거두실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너무나 쉽게 영적으로 둔감해져서, 성령의 비둘기가 이미 떠나셨음에도 불구하고 혼자 힘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어린 예수를 잃어버리고도 하룻길을 간 후에야 깨달았던 것처럼(눅 2:43-45), 우리도 성령의 임재 없이 습관적으로 종교 활동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나의 힘과 지혜, 계획을 의지하는 것이야말로 성령을 소멸하는 가장 주된 원인입니다. 성령의 불은 우리의 무능함과 연약함이 고백되는 자리에서 가장 강력하게 역사합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롬 8:26)라는 말씀처럼, 매 순간 나의 무능함을 인정하고 "성령님, 도와주십시오"라고 고백하며 그분의 도우심을 구할 때, 비로소 그분의 권능이 우리 삶을 통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성령과의 진정한 동행입니다.

5. 부르심의 소명을 재확인하라: 사명의 회복과 성화의 여정

성령의 불은 목적 없이 타오르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시고 불처럼 역사하시는 데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그 목적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바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성화(Sanctification)'의 사역과, 우리를 통해 세상을 구원하시는 '사명(Mission)'의 사역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3절은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고 선포하며, 1장 8절에서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음을 칭찬하며 증인의 삶을 강조합니다.

영적 침체에 빠져 성령의 불이 꺼져감을 느낄 때, 우리는 "그러므로 너희를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벧후 1:10)는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나를 죄와 사망에서 건져내셨는가? 무엇을 위해 나를 이 시대, 이 장소에 살게 하시는가? 나를 향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이 '부르심의 소명'을 다시 묵상하고 재확인하는 것은 꺼져가는 불씨에 바람을 불어넣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단지 개인적인 평안과 축복을 누리는 것에만 머물러 있다면, 성령의 불은 그 동력을 잃고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선을 우리 자신에게서 돌려, 우리 주변에서 여전히 어둠 속에 신음하는 잃어버린 영혼들을 향한 긍휼한 마음을 품고, 이 땅에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하는 거룩한 열망을 회복할 때, 우리 안의 성령의 불은 결코 꺼질 수 없는 강력한 동력을 얻게 됩니다. 사명은 성령의 불을 지탱하는 견고한 기둥입니다.


III. 결론: 모든 원칙의 귀결점,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라

지금까지 우리는 성령의 불을 꺼뜨리지 않기 위한 다섯 가지 중요한 원칙—회개와 기도, 말씀, 은사 사용, 성령과의 동행, 사명 회복—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이 원칙들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만약 이 원칙들이 또 다른 율법적인 자기 수행 목록이 되어 우리를 짓누른다면, 우리는 또다시 자신의 노력과 의지로 성령의 불을 지피려는 오류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원칙은 결국 우리의 시선을 단 하나의 초점,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로 향하게 하는 과정입니다.

게으름, 나태함, 무기력, 냉소주의, 불신앙의 두려움 등 성령의 불을 끄는 모든 영적 독소에 대한 궁극적인 해독제는 히브리서 12장 2절에 명확히 제시되어 있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성령을 소멸하지 않는 삶의 비결은 '나'의 영적 상태를 끊임없이 점검하는 데 있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끊임없이 바라보는 데 있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그분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과거), 지금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고 계신 일(현재), 그리고 장차 영광 중에 다시 오셔서 모든 것을 완성하실 일(미래)을 깊이 묵상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완전한 사랑과 희생, 그분의 변함없는 신실하심과 능력, 그분의 영광스러운 약속을 바라볼 때, 우리의 심령은 자연스럽게 뜨거워지며, 성령의 역사에 기꺼이 순응하게 됩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이시기에, 우리가 그리스도를 높이고 그분께 집중할 때 가장 강력하게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꺼져가는 불씨 앞에서 좌절하지 마십시오. 재를 털어내고, 말씀의 장작을 쌓고, 은사의 바람을 일으키십시오. 그러나 이 모든 행위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시선을 굳게 고정하십시오. 성령의 불을 단지 지키는 것을 넘어, 그 불로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등불의 사명을 감당하십시오. 지금이 바로,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의 성령의 불을 다시 활활 타오르게 할 시간입니다.

✨ 핵심 정리 (Key Takeaway)

  • 성령 소멸의 본질: 성령님 자체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불처럼 역사하시는 성령의 감동과 능력, 은사의 나타남을 억제하고 차갑게 만드는 행위입니다.
  • 성령의 불을 지키는 핵심: '깨어진 심령'으로 드리는 진실한 회개의 기도와, 성령의 '땔감'이 되는 말씀을 꾸준히 묵상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 은사와 사명의 역할: 성령의 은사를 교회의 덕을 위해 분별력 있게 사용하고,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 소명을 재확인할 때 성령의 불은 목적을 갖고 타오릅니다.
  • 가장 중요한 자세: 나의 무능함을 인정하고, 민감하신 성령의 인격과 임재를 존중하며, 모든 순간 그분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 궁극적인 방향: 모든 영적 노력의 종착점은 '나'의 상태 점검이 아닌, '믿음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 묵상과 점검 (Checklist)

  • 나는 성령의 감동(기도하고 싶은 마음, 용서하고 싶은 마음, 전도하고 싶은 마음 등)이 올 때, 피곤이나 다른 이유로 억누른 적은 없습니까?
  • 나의 기도 생활은 '상한 심령'의 회개보다 '나의 필요'를 구하는 데 치우쳐 있지는 않습니까?
  • 성경을 지식으로만 대하고, 성령께서 말씀을 통해 주시는 감동과 도전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성령의 역동적인 은사(예언, 방언, 치유 등)에 대해 냉소적이거나 무시하는 태도를 갖고 있지는 않습니까?
  • 내가 받은 은사를 묻어두고, 공동체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하기를 주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 나의 계획과 힘을 의지하다가, 성령님의 임재를 놓치고 '나 홀로' 달려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 삶의 실제적 적용 (Action List)

  • 매일 '심령의 재'를 치우는 회개 기도 시간 갖기: 하루를 돌아보며 구체적인 죄와 영적 나태함을 하나님 앞에 고백하고, 성령의 불로 태워주시길 간구하십시오.
  • 말씀을 '땔감'으로 넣기: 매일 정해진 시간에 성경을 읽고, 그중 한 구절이라도 깊이 묵상하며 "성령님, 이 말씀을 통해 제게 무엇을 말씀하시길 원하십니까?"라고 질문하십시오.
  • '은사 사용'의 작은 발걸음 내딛기: 내가 받은 은사가 무엇인지 기도하며 돌아보고, 이번 주 안에 교회나 삶의 자리에서 그 은사를 섬김의 형태로 사용할 구체적인 계획(예: 격려의 말 건네기, 기도해주기, 봉사 지원하기)을 세우고 실천하십시오.
  • '성령 의지' 선포하기: 하루를 시작할 때 "성령님, 오늘 하루 나의 지혜가 아닌 주님의 지혜로 살게 하소서. 나의 힘이 아닌 주님의 능력으로 행하게 하소서"라고 소리 내어 고백하십시오.
  • 기도하기: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목적이 무엇인지 묵상해 보고, 매일 기도하며 그 사명을 되새기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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