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드시 극복해야 합니다 - 거절, 무응답, 자존심 (간절함과 메마름)
본문: 마태복음 15:21~28절
I. 서론: 하나님에게 상처와 실망
우리의 신앙을 방해하는 것들이 무엇이 있을까요? 우리의 믿음이 식는 계기는 무엇일까요? 우리의 신앙을 방해하고 우리의 믿음이 식는 계기가 되는 것 중 하나는 우리가 하나님에게 실망하고 상처를 받았을 때일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상처를 받고 하나님에게 실망한다는 것이 다소 맞지 않는 말 같기는 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간절히 기도해 본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이해가 되는 말이기도 합니다. 간절하게 구하고 하나님을 찾았던 만큼 하나님이 어떻게 응답하시냐에 따라 기쁨과 감격으로 충만하기도 하고 실망하고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둔 일이 없고 기도라는 것을 제대로 해 본 일도 없다면 하나님에게 실망하거나 상처를 받을 일은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간절히 찾았던 많은 성도들은 어느 정도 하나님에 대한 상처가 다 있었고, 지금 현재 상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하나님에게 실망하고 상처를 받습니까? 이유는 자신의 기도와 간구에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길게는 수십 년, 짧게는 몇 년을 기도하며 간구했는데 전혀 기대한 대로 응답이 없었다면 그 실망과 상처는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알 수가 없는 깊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여인을 보십시오! 만약 여러분이 이 여인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하셨을 것 같습니까? 도저히 고칠 수 없는 중병이 걸린 딸을 둔 엄마의 심정은 간절함이라는 말로는 설명이 부족할 만큼 딸의 상태는 중요한 문제이지 않겠습니까? 이 여인이 겪은 냉대와 멸시는 간절한 여인의 상황에 비례해 심각한 상처를 줄 수도 있었던 사건임에는 분명합니다.
"기도의 응답이 늦어질 때, 우리는 실망하지만, 그 침묵 속에 하나님의 더 큰 계획이 숨겨져 있습니다. 믿음은 그 침묵을 견디는 힘입니다."
다음 주까지 이어지는 여인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반드시 극복해야 할 네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먼저 나의 영과 마음이 메말라 있지는 않는가! 둘째는 거절의 감정을 극복할 수 있는가? 셋째는 무응답을 참을 수 있는가? 마지막은 주님 앞에서 자존심을 버릴 수 있는가? 이 네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말씀을 통해 찾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오늘은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극복해야 할 첫 번째 물음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합니다. 영과 마음이 메말라 있지 않는가! 라는 물음에 답을 찾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II. 여인의 간절함과 예수님의 침묵
그러면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 한 여인의 안타까운 상황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사건이 일어난 곳에 대한 배경이 어디였는가를 설명하는 본문으로 시작합니다.
두로와 시돈 지방의 배경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여러분! 15장 1절부터 20절까지 보면 예수님은 거짓되고 외식하는 자들로부터 비난을 받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율법이 정한 정결을 잃었다는 이유로 예수님은 비난을 받았습니다. 아마 예수님이 두로와 시돈으로 갔다는 이야기를 이들이 들었다면 이렇게 서로 말했을 겁니다. “그러면 그렇지 예수가 하는 것 좀 봐! 이방인들 가득한 곳에 가는 것 좀 봐! 역시 예수는 정결함이 없는 거짓된 자야”라고 서로 수군거렸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가신 두로와 시돈은 역사적으로 포로기를 지나면서 이 땅은 영적으로 혈통적으로 오염된 땅으로 인식된 곳입니다. 그런 곳에 예수님이 가신 것입니다. 영적으로 가까이할 수 없는 곳이라고 멸시받는 땅에 예수님이 가신 겁니다. 왜? 따가운 시선을 아시면서 가셨던 것일까요?
그것은 아무리 영적으로 타락한 곳에서도 예수님의 사랑과 구원은 유효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섣불리 죄와 악이라고 단정하면 우리의 행동반경은 지극히 작을 수밖에 없고 만날 사람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음을 잊지 맙시다.
여인의 외침과 믿음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이렇게 사랑이 많으신 예수님에게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납니다. 이 상황을 좀 더 잘 설명한 다른 성경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방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더라 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에 엎드리니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내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이 여인은 헬라인이고 수로보니게 족속인 이방 여인입니다. 혈통적인 배경으로 보면 전혀 예수님과 상관없을 것 같고 예수님을 모를 것 같은 여인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딸이 귀신에 들려 심각한 상태가 된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의 다른 이야기를 통해 잘 아는 것처럼 귀신이 들렸다는 것은 삶이 완전히 망가진 상태를 말합니다. 거라사 지방에서 있는 귀신들린 사람을 생각해 보면 짐승처럼 정상적인 삶을 잃어버린 아주 심각한 상태가 바로 귀신에 의해 망가진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귀신들린 딸을 살리길 원하는 엄마의 마음이 이해가 되지 않나요? 시대와 인종과 문화를 넘어 아픈 자녀를 둔 엄마의 마음은 다 똑같습니다. 얼마나 이 여인이 절박했을지 짐작되시죠! 특히 고칠 방법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 이 여인에게 딸의 병은 인생의 전부를 버리더라도 고쳐야 하는 중대한 문제임이 분명합니다.
이렇게 하루하루 고통 속에서 살던 여인에게 빛과 같은 소식이 들립니다. 바로 모든 병을 고치는 예수라는 사람이 유대땅에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이 소식을 들었을 여인의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을까요? 당장 예수님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고 싶지만 귀신들린 딸을 데리고 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을 것이고 이 여인의 마음은 타들어 갔을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소문으로만 듣던 예수님이 자신이 사는 곳으로 오셨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이 여인은 아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예수님께 달려왔을 겁니다. 본문 22절의 상황이 이해가 되시지요! 왜 여인이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질렀는지를 말입니다. 놀라운 것은 이 여인의 외침이 그냥 비명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22절에 보면 “주 다윗의 자손이여”라는 여인의 외침 속에서 예수님이 누구인지에 명확히 알고 예수님을 부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예수님을 부르는 호칭은 “주, 선생, 랍비”였습니다. 주라고 예수님을 부르는 사람들은 정확하게 예수께서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의 주라는 믿음이 있었고 선생이나 랍비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나 예언자 정도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에 대한 소문만 들었던 이방 여인의 입에서 “주 다윗의 자손”이라는 말이 나온 겁니다. 아마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의 이 비명에 가까운 외침에서 이미 이 여인의 믿음을 보셨던 것이 분명합니다. 놀라운 것은 이 여인에게 예수님에 대하여 이야기 해준 사람이 바르게 전해 준 것입니다. 그저 예수님을 능력 있는 선지자 정도가 아니라 성경에서 예언한 다윗의 자손으로 온 구원의 주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누군가를 통해 들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바른 말씀의 증거는 놀라운 기적을 일으킵니다. 여인의 간절함에 바른 말씀이 전해졌으니 이는 하나님의 기적을 가능하게 하는 모든 조건을 갖춘 것이죠! 지금 우리가 지나가는 이야기처럼 하는 일상적인 말들 속에서 누군가에게 예수님이 전해질 수 있음을 기억합시다. 바르고 정확한 말씀을 전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십시오! 만약 이 여인에게 잘못된 예수님에 대한 정보를 주었다면 이 여인에게 일어난 기적은 없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III. 제자들의 메마른 반응
이렇게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지르는 상황이 되니 23절과 같이 우리에게도 익숙한 반응들이 나옵니다. 23절에서 무엇이 느껴지십니까? 사랑과 긍휼의 따뜻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죠! 그저 사역은 하지만 사랑이 빠진 사람들만 보입니다. 이렇게 사랑과 긍휼이 빠진 사역자들은 상황만 보고 자신들이 해야 할 일만 봅니다.
제자들의 귀찮아하는 모습이 왜 이렇게 익숙할까요? 주님을 위해 봉사하는 우리의 말과 태도는 아닙니까? 열심히 주님의 일은 하지만 우리의 날카롭고 긍휼함을 잃어버린 우리의 모습은 아닙니까?
"제자들의 반응은 우리 자신의 메마른 영적 상태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은혜의 익숙함이 무감각을 부르지만, 회복은 기쁨과 감사에서 시작됩니다."
또 23절에서 의아한 것은 제자들의 짜증이 예수님께 향해 있다는 사실입니다.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제자들이 청하여”를 굳이 해석하면 “예수님께 간청했다”이지만 제자들의 마음은 이 여인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고 있고 이 상황을 예수께서 빨리 해결하지 않고 있다는 불만입니다.
“빨리 해결해주시던지 아니면 꾸짖어 보내시던지 하시면 될 것을 저렇게 소리를 지르는데 왜 가만히 계시는 거야”라는 불만이 가득한 제자들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우리 역시도 주님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면서 힘들다고 바쁘다고 왜 나만 이렇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나님께 불만을 쏟은 일은 없습니까?
여러분! 한 사람은 목숨을 걸고 예수님을 찾고 한 무리는 간절한 소리는 듣지 못하고 상황만 보고 있습니다. 한 사건에서 상반된 이런 반응이 지금 우리와 교회 안에 일어나는 일들이 아닌가요? 미친 사람 취급받으며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리는 것을 알면서도 예수님께 나오는 그 사람을 향해 “교회에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교회에서 이렇게 큰 소리로 기도하시면 안 됩니다. 교회에서는 다른 사람들을 좀 배려하셔야 합니다.”라고 이야기 하지는 않았습니까?
메마름의 원인: 익숙함과 무감각
교회는 공동체 안에서 서로 지켜야 할 예의가 있고 규범이 있는 것은 맞습니다. 그리고 가끔 보면 악한 귀신과 마귀의 역사로 이렇게 예배를 방해하는 일들도 있긴 합니다. 이런 경우라면 당연히 막아야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영적 분별이 없고 사랑이 없는 사역자들이 간절함으로 나와 주님을 찾는 사람을 몰라본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이 사건 이전에 이미 예수님이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귀신들린 사람을 어떻게 고쳐주셨고 그들을 어떻게 대하셨는가를 제자들이 많이 봤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반응은 지극히 인간적이고 메말라 있습니다. 이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는 현실이 씁쓸합니다.
여러분! 오늘 주인공은 귀신들린 딸을 둔 가여운 이방 여인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이 여인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 이 여인의 사건을 통해 우리의 메말라 있는 마음과 딱딱하게 경화된 우리의 영적 상태를 함께 보여주고 있음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언젠가부터 주의 일을 한다는 우리의 말이 차가워지고 형식적인 어투로 변하지는 않았습니까? 사랑으로 권면하고 들어주던 우리가 직분과 의무감으로 일을 하듯 하는 것은 아닙니까? 많은 사역들 속에서 지금 감사와 기쁨을 간직하고 있습니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따뜻하지 못한 성도들의 말과 행동 때문에 실망하고 교회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왜? 이렇게 주님을 위한 삶을 살면서 메말라 있습니까? 왜 이렇게 주님을 위해 열심히 봉사하면서 예수님의 사랑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여러분! 기적을 많이 체험하고 놀라운 은혜를 많이 체험하면 할수록 마음과 말과 태도가 부드럽고 따뜻해지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적과 은혜의 삶을 살면서 “익숙함”이라는 심각한 병에 걸려 영적 감각을 상실한 무감각증에 걸리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무감각증은 우리를 차갑고 형식적인 메마른 마음과 삶으로 말라비틀어진 밭처럼 생명이 자랄 수 없는 척박한 밭이 되게 만들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23절의 제자들의 반응이 익숙함으로 무감각이라는 병에 걸린 우리의 모습은 아닌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많은 사역과 바쁜 일상 속에서 우리가 이렇게 변질되지 않도록 지금 우리를 다시 새롭게 할 시기가 되었습니다. 믿음이 있다 없다, 구원이 있다 없다 이야기 하며 남의 신앙을 저울질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먼저 은혜에 대한 반응이 어떤 상태인지를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IV. 메마름 극복: 기쁨, 기도, 감사
그러면 이렇게 익숙함과 무감각으로 메마른 상태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세 가지만 기억하면 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기뻐하십시오! 쉬지 말고 기도하십시오! 범사에 감사하십시오! 이 모든 것을 “항상” 하십시오! 그러면 메마름의 상태를 극복하게 될 겁니다.
① 모든 순간에 기뻐하는 사람: 좋은 일이든 힘든 일이든 일상적인 일이든 나쁜 상황이든 하나님의 손길과 도우심을 믿고 의지하며 모든 순간을 기쁨으로 받습니다. 이 기쁨은 우리의 마음을 담대함과 평안함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② 쉬지 말고 기도하십시오! 문제가 생겼을 때만 아니라 항상 주님을 찾는 성도가 되십시오! 늘 주님을 생각하며 주님의 음성을 듣기를 좋아하는 성도가 되십시오! 이렇게 주님의 음성을 듣기를 소망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당신의 마음을 정확하게 알게 하신다는 것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아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지혜로 주님께 시선을 고정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어떻게 마음이 차가워지고 딱딱해지겠습니까?
마지막으로 범사에 감사하십시오! 감사는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듭니다. 감사는 우리의 이기심을 녹이는 강력한 빛입니다. 그래서 범사에 감사를 잃지 않는 사람의 언어에는 항상 따뜻함이 있고 친절함이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여러분! 따뜻한 말은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고 친절한 말은 마음을 기쁘게 한다는 잠언의 말씀을 기억합시다.
이렇게 감사의 마음과 언어가 있는 사람의 마음은 어떤 순간에도 예수님의 긍휼을 잃지 않습니다. 주님을 향한 간절함으로 주님께 달려 나온 여인이 되십시오! 이 여인을 보며 눈살 찌푸리는 제자들과 같이 반응하는 메마른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메마른 마음은 은혜의 익숙함에서 비롯되지만, 기쁨과 감사로 회복됩니다. 매일의 기도는 우리를 새롭게 합니다."
V. 도전: 사랑과 긍휼 회복
익숙함으로 무감각의 병에 걸린 성도가 있다면 이제 예수님의 사랑과 긍휼을 회복해야 합니다. 교회는 일하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수많은 프로그램과 조직으로 움직이는 곳이 아닙니다. 오직 교회를 움직이는 힘은 예수님의 사랑이어야 합니다.
맡겨진 일을 잘하는 성도가 되십시오! 그러나 잘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바르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바름은 예수님의 긍휼과 사랑에 있음을 기억합시다. 사랑과 긍휼의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주님과 함께 하는 복된 삶을 통해 메마름을 극복하는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핵심 정리 (Key Takeaway)
- 하나님에게 상처와 실망은 응답의 지연에서 비롯되지만, 간절함은 믿음을 키웁니다.
- 메마른 마음은 익숙함과 무감각에서 오며, 제자들의 반응처럼 사랑을 잃게 합니다.
- 기쁨, 기도, 감사로 메마름을 극복하고 예수님의 긍휼을 회복하십시오.
- 간절한 여인처럼 주님을 찾고, 따뜻한 마음으로 사역하는 성도가 되십시오.
묵상과 점검 (Checklist)
- 하나님께 실망하거나 상처받은 적이 있습니까? 그 실망을 어떻게 극복했나요?
- 사역 중에 메마른 반응을 보인 적이 있습니까? 사랑과 긍휼이 빠진 순간은 없나요?
-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습관이 있습니까?
- 사람을 만날 때 따뜻하게 대하나요? 제자들처럼 무감각하십니까?
삶의 실제적 적용 (Action List)
- 매일 기쁨, 기도, 감사의 습관을 실천하며 메마른 마음을 회복하십시오.
- 사람을 만날 때 긍휼로 대하고, 사랑의 말로 응답하십시오.
- 사역 중 불만이 생기면 예수님의 사랑을 묵상하며 태도를 점검하십시오.
- 바른 말씀을 전하며, 누군가의 믿음을 키우는 증인이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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